[아름다운 人터뷰]바다를 향한 꿈, 꿈을 향한 바다 / 안희현, 고령함장

“처음이라고 두려워하지 말자.”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최초의 여군 함장이자 제23대 고령함장으로 취임한 안희현 소령(해사 57기, 38세)이 늘 가슴에 새기는 문장이다. 1999년 첫 여성 해군사관생도로 입교하여 임관한 안 소령은 구조함 항해사, 구축함 유도관, 초계함 작전관, 호위함 전투정보관 등을 거쳐 현재 적군이 부설한 기뢰를 탐색·제거하는 함정을 이끌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한계에 갇혀 좌초되지 않고 투철하고 치열하게 설계된 삶의 해도를 펼치며 나아갈 그녀만의 항로는 어떤 모습일까. 매 순간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는 안 소령을 만나기 위해 평택을 찾았다. 그날 겨울 바다는 유난히 깊고 쪽빛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 함장이 되었다. 소감이 어떤가.

처음 함장으로 거론됐을 때, 정말 내가 될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막상 됐다는 말을 들으니 놀라움과 부담감이 앞서더라. 개인적으로 엄청난 영광이고 군인으로서 좋은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솔직히 거절하고 싶을 정도로 걱정됐다. 자부심과 부담감이 교차한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떨치고 먼저 해보자는 용기를 갖기로 했다.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부딪쳐 보자는 생각이었다. 사관학교 시절에도 두려움의 연속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이 없다면 우리를 처음으로 뽑아주신 의미가 없지 않나. 지금은 대원들과 하루하루 함께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5개월 정도 함장으로 지내보니, 그전에 내가 모셨던 함장님들의 고충을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다(웃음).

‘최초’라는 말에는 여군으로서 녹록하지 않은 현실도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해군에서 여군은 5프로 정도인데, 주로 육상 근무를 하는 편이라 배에 있는 여군의 비율은 더 낮아진다. 실제로 해군사관학교가 여성을 처음 받아들인 것도 1999년부터이다. 그동안 우스갯소리로 배에 여자가 타면 고장이 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인식이 있었다. 마치 심청전처럼 말이다(웃음). 공군이나 육군은 구분만 지으면 여군을 수용할만한 시설이 많은데, 해군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일단 배라는 공간은 협소해서 생활하기 힘든 환경이고, 한번 육지를 떠나면 배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그만큼 극소수인 여성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차별보다는 경력 등에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 내가 정장을 거치지 못한 것도 당시 출산휴가를 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출산 후 육아를 하다 보면 긴급 상황이 있는 부서에 가기는 어렵다. 남군들이 항해과로 가는 비율은 60~70% 정도인데, 여군은 아무래도 배를 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어느 조직이나 어려움은 있지만, 확실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 역시 둘 다 잘하고 싶고, 둘 중 하나를 놓지 못할 것 같아서 잠시 전역을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사관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버텨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한다면 두 딸에게 앞으로 무엇을 열심히 하라고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이 또한 자기 위안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과 가족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떳떳한 군인이 되고 싶었다.

함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나.

보통 민간에서는 선장이라고 부르는데, 군에서는 함장이라고 한다. 내가 이끌고 있는 고령함의 경우, 작전적인 부분이나 인원 및 장비 관리 등에 관한 모든 것을 직접 운영하고 명령하는 역할을 한다. 육군에서의 대대장처럼 내 결심과 판단으로 대원들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위급한 상황에 노출되기 때문에 부담감이 엄청나다. 단순히 리더 역할을 넘어 사람의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라 늘 흐트러지지 않고 신중해야 한다. 내 말에 따라 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도 오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 판단으로 대원들이 헛수고를 할 수도 있으니 말을 내뱉기 전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만큼 서로 소통이 중요하다.

군인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사실 처음부터 군인이 꿈은 아니었다. 학창시절에는 사관학교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물론 드라마 <모래시계> 등에서 육사가 나와서 들어보긴 했지만, 해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러던 중 1998년 고3 자율학습 시간에 해사 선배님들이 찾아왔는데, 제복도 제복이지만 말씀을 너무 잘하셔서 그 모습이 그렇게 늠름하고 멋있어 보였다. 나도 앞으로 저 선배님들처럼 제복 입고 기숙사 생활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해사에 갔고, 지금은 이 배의 함장이 됐다(웃음).

군인으로서 롤모델이 있다면.

지금은 전역하셨지만, 대위 때 모셨던 함장님이 기억난다. 그분은 부족한 장교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무조건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의 말을 많이 듣고 참고하라고 당부하셨다. 또한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고 멈춰서도 안 된다고도 하셨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느낀 적이 있나.

함장의 목적은 작전 임무와 완수이다. 지난해 8월 함장으로 부임하고 각종 교육과 훈련 평가를 마친 후 10월 추석 연휴 중간인 5일에 첫 출동 임무를 나가게 됐다. 막상 수로 끝 큰 바다에 다다르니 파도가 엄청나서 침로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대로 갈지 돌아갈지. 함장으로서 결정을 번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를 일이라 지휘부에 보고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다음 날인 6일에 다시 항해를 나섰다. 이후 한 달간 주어진 첫 출동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진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제야 함장으로 부임한 후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조금은 자신감이 생기고 큰 산을 넘은 듯했다. 정말 순간순간이 도전이고 뭔가를 넘는 과정이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한국 군인이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정책적인 부분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은 하루빨리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짓는 것이다(웃음). 현재 남편은 화성의 해병대에 있고, 나는 두 딸을 돌봐주시는 시어머니와 함께 진해에 있다. 여군의 삶이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 특수한 삶을 잘 살아내서 나 자신과 여군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매일이 도전이기에 하루하루 잘 견디고 버텨내는 삶이 곧 나의 새로운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