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나의 길, 나의 만남 / 금나나, 동국대학교 교수·미스코리아

지금은 KTX 안, 창밖 너머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오늘 내가 만나게 될 학생들은 어떨까?’ 커피 한 모금과 함께 나만의 상상에 빠진다.

미국에서 12년이라는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동국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조교수라는 자리도 어느덧 친숙해졌다. 길 가다 마주치면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하는 학생들, 수업시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설명에 귀 기울여 주는 학생들. 가끔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학생들. 우왕좌왕하는 신임 교수인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우리 동국대 학생들이 그저 고맙고 예쁘기만 하다.

한국에서 교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 후, 나에게는 우리 모교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임무(?)가 있음을 느낀다. 바로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교육의 혜택이 적은 지역에 사는 학생들에게 꿈의 씨앗을 심어주는 일이다.

경북 과학고등학교 졸업–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자퇴–하버드 학사–컬럼비아 석사–하버드 보건대학원 박사, 그리고 2002년 미스코리아 진. 언론에 알려진 나의 화려한(?) 이력은 사람들에게 종종 선입견을 갖게 만든다. 풍족한 집안에서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 부모님으로부터 모든 지원을 받으며 아무런 걱정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거라고.

하지만 나의 실상은 사뭇 다르다. 나는 영주라는 작은 시골에서 자랐다. 영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석사가 위치한 지역이라고 하면 그제야 ‘아하!’하는 지역이다. 체육 선생님이신 아버지와 가정 선생님이신 어머니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소위 ‘금수저’는 아니다. 학력에 비해 아이큐도 평범한 편이고, 중간에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장벽에 갇히지 않고 지금까지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순간순간마다 훌륭한 스승님들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꿈을 갖게 영감을 주시고, 내 안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게 해주셨던 스승님들. 이제는 내가 학생들에게 그 역할을 하며 은혜를 갚을 때라는 것을 직감한다.

휴대폰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뜬다. 오늘은 해군사관학교에서 강연하기로 한 날이다. 창원으로 가는 기차를 놓칠까 봐 시간차를 두고 알람을 맞춰 놓았다. 출발 2시간 전, 1시간 반 전, 1시간 전. 중간 중간 깼다 잠들었다 하니 잠을 잤는지도 안 잤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학교 강의도 없으니 침대에서 좀 더 뒹굴뒹굴하며 늦잠을 자고 싶다는 유혹이 스쳐 지나간다. 재빨리 드라마 OST를 튼다. 멜로디에 잠을 깨며 침대 밖으로 나와 준비를 서두른다. 일산에서 창원까지, 무려 왕복 9시간이나 걸리는 여행길이다. 기차에서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챙긴다. 집 밖으로 나서기 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자신을 다잡아본다.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고.

드디어 강연장 무대 위로 올라간다. 학생들이 환호를 보낸다.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늘 설레면서도 두렵다.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설 만한 자격이 되는가?’ 순간 움츠러든다. ‘그래! 난 누구 못지않게 참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잖아!’ 다시 어깨를 편다.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비록 나는 미완성이지만, 그래도 학생들보다 조금 더 인생을 산 가까운 선배의 마음으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고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해 왔는지 진솔하게 전한다.

강연의 중반쯤 되었을까.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옷이 젖어드는 것을 느낀다.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도 보인다. ‘금요일 오후인데, 한 시간 반 강연이 얼마나 지겨울까?’라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나와 호흡을 함께하는 학생들도 보인다. 그 눈빛을 바라보며 간절히 바란다. 부디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 이야기가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