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자국 _ 관객과의 소통 _ 손일훈

첫발자국

 

관객과의 소통

 

손일훈, 작곡가·음악감독

 

중학교 시절 어느 날 쉬는 시간이었다. 교실 뒤편에서 학급 게시판을 둘러보고 있던 나는 급식 메뉴와 여러 안내문을 읽던 중 흥미로운 공문을 보았다. 예술고등학교에서 일반 중학생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지원 분야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 각종 악기와 성악, 그리고 작곡이 있었다. 음악을 전공할 생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 피아노를 남들만큼 배우긴 했으니, 뭐 어때? 라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나는 바로 안내문을 들고 음악을 가르치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당당했던 내 모습을 본 선생님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의문의 표정을 짓다가 곧 안내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작곡 분야에 지원해 볼 것을 권유하셨다. 그러고는 다음 날까지 네 마디의 짧은 멜로디를 작곡해 오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음표도 거꾸로 그리고 음자리표 위치도 틀린 형편없는 악보였지만, 선생님은 음악 자체는 나름 괜찮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 뒤로 예술고등학교 교육 프로그램 오디션에 필요한,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을 알려주셨다.

돌이켜보면 담임선생님은 이전부터 내가 음악에 소질이 있음을 알고 계셨다. 음악 시간을 가장 좋아했고,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한다며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음악실을 사용하는 것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렇게 선생님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운 좋게 오디션을 통과했고,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받으며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 직업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스스로 진로를 택함으로써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고, 동시에 더욱 몰입할 수도 있었다.

그 후 뛰어난 친구들과 선후배를 수없이 만나며 음악을 배웠고, 입시나 유학 문제와 더불어 내 음악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도 내 곁에는 항상 본질이 무엇인지, 예술가로서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바로 잡아주는 중요한 선생님과 동료들이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계속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왜 작곡을 하는가? 이 질문은 연주자나 무용가, 작가, 화가, 배우 등 모든 예술가가 자신만의 질문과 대답을 찾을 때까지 고민할 것이다. 단순하게 좋아서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예술은 당연하게도 자기만족 없이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이 질문은 더 나아가 내가 예술 행위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예술가와 작품의 존재, 그리고 공허와 진실 사이를 오가며 예술 활동을 한다. 설령 어느 순간 답을 찾았다 하더라도 이 고민은 시간이나 작업 환경에 따라 돌고 돌면서 다른 모습이 되어 찾아오는 게 흥미롭다. 핵심은 같지만, 겉모습이 다른 질문이라면 대답도 그런 식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처음 떠올렸을 때 나의 대답은 스스로 내 음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특정 곡이나 분위기의 음악이 듣고 싶을 때는 보통 찾아서 들으면 되지만, 내 머릿속의 음악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그 상상의 소리를 받아 적고, 구현하는 것이 작곡의 큰 즐거움이었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대답이 추가되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스스로 경계를 정하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 음악이 흘러가는 대로 놔두거나 때로는 간섭하는 등 작곡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이런 것들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

이런 생각이 쌓이며 최근 추가된 세 번째 대답은 메시지. 작품에 메시지를 담는 것, 그것이 관객에게 전달되어 소통으로 이어졌을 때 아주 기쁘고 보람차다. 사실 이 소통은 우리가 어떤 예술을 감상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우선시하는 부분, 즉 첫발자국이다. 왜 나는 그것을 이제야 새삼 깨달은 걸까? 생각해 보면 그 순서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앞으로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이 질문에 나는 또 어떻게 답하게 될까? 그 대답이 여러 번 쌓이면서 생각이 점점 더 깊어지고, 유연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예술을 사랑하고, 작곡가로 살아가는 이유, 더 나아가 이는 우리가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아닐까?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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