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_ 붓길 따라, 마음길 따라 _ 왕열

그림이 있는 에세이

 

붓길 따라, 마음길 따라

 

 

나의 작품세계는 동양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그림의 표현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이다. , 동양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전통 동양 정신의 개념을 오늘날 시대에 맞추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이를 작품 세계의 근본으로 삼고자 하였던 것이다.”

 

- ‘닮음과 닮지 않음, 다빈치(2004), p.10

 

20여 년 전, 왕열 화백이 남긴 문장 사이를 미음완보(微吟緩步)하며 삶의 행간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동안 그가 끊임없이 강조한 예술철학을 다시금 상기해 본다. ‘자연의 이치가 어떻게 그림으로 시각화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화폭에 겹겹이 쌓인 분투의 시간으로 명료해진다. 붓길 따라 마음길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디뎌온 시간의 궤적은 사유의 산이 되어 첩첩의 능선을 만들어 낸다.

동양 사상을 기조로 삼아 구축한 그의 작품세계는 시대와 조응하며 현재성을 확보한다. 현상(現象)에 앞선 본질, 본질을 따르는 형상(形狀)에 천착해 온 탐구 정신은 집요하고 열정적인 미적 세계로의 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상상력으로 빚은 예술적 공간, 그 안에 응축된 시간을 펼쳐보면 작품 사이의 변화와 차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 외연과 내연의 확장이 역력히 드러난다. 이는 곧 정신성으로의 회귀이다.

 

작품은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유려한 필체는 수려한 문체가 되고, 자연을 닮은 색과 여백은 생동감 넘치는 시어가 되어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삶을 관조하는 서정시로 다가온다. 여기서 여백을 온전히 채우거나 비워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자신만의 화법을 따르며 비어 있음을 채움으로, 채워져 있음을 비움으로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소식)가 남긴 이 유명한 말이 절로 떠오른다.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뜻이다.

예술이 삶과 조우할 때 관념은 체험이 된다. 그의 작품에 배치된 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사유의 깊이와 층위를 내포한다. 이는 화자뿐만 아니라 감상의 주체에게도 동일한 심상(心象)을 경험하게 한다.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의 메타포로서 내면의 심상(心想)에 가닿는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어조와 음률은 시적 화자로서의 그의 태도에 기인하며 이는 정교한 시적 언어로 발화되어 감상자에게 나지막하게 전달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한 편의 시를 읊조리는 것과 같다.

 

그는 오늘도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은유한 이상향을 꿈꾼다. 그곳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유토피아이다. 그 안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 실존의 고통을 극복해 내려는 긍정의 태도와 생의 의지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처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삶의 단상은 나와 타인이 공존하는 세계를 지향하며 사실에서 진실로 나아간다. 언어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사색하고 또 성찰하며.

 

. 김신영 편집장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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