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은 ‘만개한 꽃다발’이었다고 한다. 탄생과 동시에 만개함이라니! 어색하고도 과분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나는 세상에 뗀 어색한 첫 발걸음만큼이나 꽃다발을 선물해 준 이의 과분한 사랑 속에서 쑥쑥 자라났다.

나의 처음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첫걸음마, 첫 입학식, 첫 실패와 더불어 나의 모든 서투름에는 언제나 그가 나를 지지하고 있었다. 와중에 첫 월경을 하던 그날이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그의 특별한 지지력이 빛을 발휘한 날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또래보다 조금은 빨리 월경을 시작했고, 그것에 대해 잘 몰랐기에 영문 모를 피를 보고 엉엉 울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죽을병인가 싶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엄마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엄마는 슬퍼하기는커녕 박장대소하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하 파티를 열어야 한다면서. 그날 밤, 그는 내가 태어났을 적과 마찬가지로 만개한 꽃다발과 피자 한 박스를 양손에 든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세상 모든 여성이 겪게 된다는 흔하디흔한 월경을 하게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대한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후, 남자 친구와 처음 이별할 적에도 그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가슴 아픈 상실감에 엉엉 우는 나를 보며 그는 외려 크게 웃을 뿐이었다.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면서.

그 위태로웠던 시절. ‘처음’이라는 순간이 주는 불안감, 때로는 그 불안감을 압도할 만큼의 설렘 속에서 혼란을 느끼던 내게 미완성이라는 건, 곧 변화될 여지가 많다는 의미와 같다면서 그는 나의 모든 변화를 세심한 눈길로 지켜봐 주었다. 어쩌면 그런 그가 곁에 있었기에 나는 어른이 될 필요를 조금은 뒤로 미룰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인생에서 ‘처음’의 순간들이 서서히 적어지던 어느 날, 더 이상 솔직함이 미덕만은 아닌 시절이 도래하고야 말았을 때 나는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탈 때 느꼈던 안정감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운전면허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하는 그런 능숙한 어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도 어른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험해야만 했던 그의 고독한 시절들을. 그제야 나는 그의 처음에도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에게 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처음 내게 꽃다발을 선물하며 결심한 무언가는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게 따뜻한 햇살과 달콤한 물이 되어주었고, 그렇게 그는 끝까지 나를 피워낸 이후에야 비로소 작별을 고했다. 그에게 나는 기어코 지켜내고 싶은 꽃이었나 보다.

이제 나는 처음 남자 친구와 이별할 때의 상실감보다 더 깊은 상실감에 대해 알고 있다. 사실 그가 없는 삶이란, 내가 참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나날이 많아졌다는 의미와도 같다. 실은 내가 만개한 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꽃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의 덕분이다. 여전히 처음처럼 실수하고 서툴더라도, 나는 그가 애써 지지하고 지켜내며 피워낸 꽃이라는 자부심 아래 깊이 뿌리내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오래전, 처음으로 배운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너무도 뿌리가 깊어, 아빠의 품에 안긴 그날부터 지금까지도 내 삶을 지탱하는가 보다.